책 소개

봄의 여행자에 이은, 최고의 작가 콤비가 선사하는 일러스트 소설집 제 2! 오후도 서점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 무라야마 사키의 미발표 작품을 포함한 세 가지 단편이 컬러 일러스트와 함께 돌아왔다. 단조로운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주인공들은 따스한 용기를 건넨다. 일러스트레이터 게미의 그림과 함께 화려하게 수놓아진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환상적인 세계가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트로이메라이

근미래, 로봇이 일상 속으로 들어온 세계.

마나미는 아빠와 로봇 오빠와 살고 있었는데…….

 

벚나무 밑에서

섣달 그믐날, 오랜만에 유리가 돌아왔다.

같은 해에 태어난 고양이와 소녀의 이야기.

 

가을 축제

깊은 산속에 버려진 낡은 오히나사마와 오다이리사마, 세 궁녀.

그 인형들에게 어느 날 밤 영혼이 깃든다.

 

 

본문 속으로

 

봄이 왔어요. 역 앞 공원에 해바라기가 활짝 폈습니다. 해바라기는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에 피는 꽃이었지만 기후가 바뀐 지금은 봄소식을 전하는 꽃이 되었어요.’

(중략)

나는 더위에 무척 약하다. 내가 아직 아기였을 때 돌아가신 엄마처럼.

일본과 세상의 많은 사람이 엄마처럼 요즘 세상의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여름이 올 때마다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여름은 죽음의 계절이다. 세계 인구는 2000년 무렵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학교에서 배웠다. _4, 트로이메라이

 

 

방에서 잔에 든 차가운 차를 마시는 사이에 졸음이 쏟아졌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 보았지만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아 난감해 하자 시로가 곁에서 조용히 음악을 연주해 주었다. ‘트로이메라이였다.

시로의 팔이 허공을 쓸고 손가락 끝이 보이지 않는 현을 튕기면 소리가 들린다. 시로의 몸 안에는 테레민이 내장되어 있다. 손과 손끝의 움직임만으로 음악이 생겨난다. _18, 트로이메라이

 

 

유리. 10년 전에 처음으로 이 집에서 만났을 때 나는 다섯 살이었다. 유리도 다섯 살이었다. 나이는 같아도 나는 고양이고 유리는 인간이므로, 이미 어엿한 어른인 내가 어린 유리의 언니 같았지. 그때도 섣달 그믐날이었다. 눈이 내리는 추운 밤. 내가 추위를 타는 어린 유리의 품에 안겨 따뜻하게 데워 주었지.

옛날 일을 떠올리고 목을 고르륵고르륵 울리고 있는데 할머니가 내 머리에 다정하게 손을 올리고 유리에게 말했다.

사쿠라는 완전히 나이를 먹었어. 온종일 잠만 자. 이래 봬도 사실은 이미 꼬부랑 할머니거든.”

그런 말은 실례야. 나는 꼬리를 붕붕 휘둘렀다. _67, 벚나무 밑에서

 

 

어떻게 하면 좋겠소? 우리는 비록 인형의 몸이나 이렇게 혼령이 깃들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소. 돌아가려고 하면 그리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오. 인형의 다리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나, 다행히 우리는 인형인지라 먹고 마시지 않아도 되고 잘 필요도 없지 않소. 그렇다면 아무리 긴 여로라도 언젠가는 그리운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게요.”

아니 됩니다.”

오히나사마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돌아갈 수는 없어요. 우리는 이미 필요 없다고 버려진 몸입니다. 이제 와서 어찌 돌아가겠습니까?”

그럼 이제 어쩌면 좋겠소?”

글쎄요.”

오히나사마는 또 다시 달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이윽고 말했습니다.

그건 천천히 생각해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우리는 인형이니 죽지도 않지요.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기에는 무한한 시간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오히나사마 일행은 여행을 떠났습니다. _80, 가을 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