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 선택으로 죽습니다.”

안락사가 합법화된 사회. 하지만 안락사 신청 후 한 달 간 수면 상태를 겪고 철회를 할 경우 정부에서 연금을 지급해주는 제도. 이 수면 상태에서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기회가 생기는데, 이때 긍정적으로 재구성한 기억을 갖고 현실로 돌아온다면 트라우마를 삭제하면서 정신적으로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이로운 점도 있다. 이제 겨우 스물넷인 다루는 안락사를 결정한다. 죽음을 온전히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의지로 말이다. 한 달의 수면 상태가 끝나고 5분 안에 승인 버튼을 누르면 최종 사망에 이르는 시계를 찬 채 다루는 깊고 무거운 여행을 시작한다. 과거로 돌아간 다루는 사무치게 그리웠던 탄을 만나고, 데자뷰처럼 그때와 동일한 장면을 마주하게 되는데. 안락사 프로그램의 AI인 'J(제이)'가 다루에게 나타나 탄과의 기억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탄에게 나타나서는 다루를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다루의 수면 세계, 제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꾸고 싶은 기억 그리고 후회 앞에서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
삶의 허무에 빠진 이들에게 묻는 질문

'안락사'라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내면의 감추고 사는 트라우마나 애절한 그리움들을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다. 언뜻 보면 과거로의 여행이라는 점에서 타임슬립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정해진 운명이 아닌 주인공의 자의식 속에서 어둡고 슬픈 과거를 직접 대면하면서 터져 나오는 감정을 스스로 오롯이 겪어내는 모습이 좀 더 현실적인 공감을 느끼게 한다.
죽고 싶어 하던 다루와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한 탄,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죽은 제희. 죽고 싶지 않은 마음과 잊히고 싶지 않은 마음에 대해 심오한 메시지를 던지는 이 작품은 '삶'을 철학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쭉 따라가게 만든다.
특히 이 [여섯자의 소년]의 마지막은 큰 울림을 준다. "산산이 흩어졌던 존재는 작은 소망 하나를 구심점으로 삼아 형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형태는 다시 삶을 갖고, 삶은 갈림길 앞에 선다. 눈앞의 갈림길은 희망을 품게 하고, 가지 못한 길은 후회를 남기며, 선택한 길은 행복, 기쁨 혹은 좌절과 슬픔. 그도 아니면 무엇도 아닌 채 다음 갈림길을 향해 뻗어 있다. 그렇게 굽이쳐 발걸음을 옮기는 이 형태는 죽으면 고작 여섯자의 몸. 하지만 고작 여섯자의 몸이 될지라도, 소망을 담은 그 몸은 또다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나아간다." 이 마지막 대사는 그 어떤 말보다도 역설적으로 강한 긍정과 희망을 새기게 한다.
삶과 죽음의 선택지에서 순수한 사랑과 용기의 힘을 보여주는 이 [여섯자의 소년]을 삶의 허무에 빠진 이들에게 선사한다.